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원나라]]의 [[쿠빌라이 칸]]은 1257년, 1284년, 1287년 3차례 [[쩐 왕조|대월]]을 침공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. [[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|이런 비슷한 사례가 일본에도 있으나]], [[가마쿠라 막부|일본]]은 2번 모두 [[태풍]]으로 물러났지만, 대월은 1차를 제외하고[* 질병 때문에 후퇴했다는 1차 원정마저도 게릴라전이 한 건 했다.]는 [[쩐흥다오]]과 그의 수하에 있는 대월군의 실력이 승리를 견인했다는 차이가 있다.[* 다만 일본 침공도 1차에만 몽골군에 털렸지 2차에서 잘 싸우다가 태풍이 결정타를 먹인것이다.] 또한 [[남송|송나라]]도 3번에 걸쳐 일어난 [[몽골 제국|몽골]]의 공습에 40년동안 버텼기에, 이는 대월과 비슷하나, [[남송|송나라]]인 경우는 중요 거점지역인 양양, 번성, 강주, 사천이 모두 점령당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멸망을 당했지만, 대월은 세 번에 걸친 전쟁 이후에도 멸망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. 대월 원정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그 동안 몽골에서 다른 대외 원정과 달리 수에서 상대보다 우위인 전력을 내세운건데 몽골은 송나라와 [[대리국]] 정벌 와중에 찔러보기 형식이었던 1차를 제외하고 2차, 3차에서 50만, 30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대월을 세 차례나 쳐들어갔는데도 실패했다는 점이다.[* 그 전까지 몽골은 상대보다 더 적은 수로 싸웠으면 싸웠지 상대보다 많은 수로 대외 원정을 시도한 적이 거의 없었다. 또한 수십만 대군을 두 차례나 동원했던 것도 이 때가 유일하다.][* 사실 이 때부터 몽골 군의 편제는 주로 한족 등 점령지 주민들로 이루어진 혼성군으로 이루어지면서 군사력이 많이 약화되었다. 애초에 몽골인들의 수가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점령지에서 징집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.] '''참고로 이 전쟁으로 인해 [[몽골 제국]]의 [[세계정복]]은 완료된다. [[아인 잘루트 전투]]가 [[공세종말점]]이였다면 베트남 원정은 세계정복을 완료하는 전투였던 것이다 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